글. 이경률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부교수)
또 다른 결정적 순간을 찾아서 / 임민영, 또 다른 시간의 흔적과 잔상

“언제부터인가 나는 하루하루가 비슷한 인상을 남기며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매일 같은 방 안에서, 매일 같은 천장을 보며 깨어나고,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매일 같은 라디오 소리를 듣고…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은 나를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면 하루도 완전히 같은 날은 없었다. 어느 샌가 발톱은 자라있었고, 화장품 공병에 꽂아놓은 국화는 물을 반 이상 흡수한 모습이었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책 위에도 모르는 사이 먼지가 수북이 쌓여갔다. (…) 이러한 세부들이 나로 하여금 평소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변화를 느끼게 한다.” (임민영 – 작가노트 중)
시간의 자국은 결코 움직임과 제스처의 흔적만이 아니다. 또 다른 시간의 흔적이 지속의 형태로 언제나 일상에 공존한다. 이러한 개념은 비유적으로 의식의 잔상(殘像)으로 비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초 이하의 어느 순간부터 모든 장면을 볼 수 없게 되는데, 초 이하의 장면은 앞 장면의 잔상에 겹쳐져 우리의 눈으로 인지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눈이 인지하는 동작과 동작 사이의 장면은 특수 장비를 동원하지 않는 한 오로지 논리적 추측만으로만 가능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움직임과 제스처가 사라진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움직임과 움직임 사이에 숨어 있는 시간은 움직임의 잔상과 동시에 지속하고 그 잔상은 오로지 경험적인 일상에서 기록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때의 사진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된다. 결국 사진에서 전혀 움직임이 없는 장면일수록 잔상의 흔적은 분명해진다. 작가 임민영이 보여주는 장면들 예컨대 선풍기 먼지, 천장의 곰팡이, 옷의 보푸라기 등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시간의 지속을 분명히 보여주는 일종의 시각적 장치인 셈이다. 거기에는 결코 사건의 단서나 소통의 의미가 아닌 작가의 마이크로-관찰(micro-observation)을 통한 또 다른 시간의 흔적이 있을 뿐이다.
사진예술,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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